관동팔경 답사후기...

그렇다... 나에겐 지난여름을 떠올리면 잊지 못할 추억 하나와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이 있다. 이름하야 관·동·팔·경·무·전·여·행!!
개강을 며칠 앞두고 나는 시현선배와 제욱선배, 주현이와 함께 Hitch를 하면서 4박5일 동안 관동팔경을 둘러보고 왔었더랬다.
급조되어 떠난 여행이라 출발과정에서 에피소드도 많고 정신도 없었지만 Hitch를 하며 평해 월송정에서부터 시작해 망양정, 죽서루 등을 지나 간성의 청간정까지 가는 여정은 더없이 여유 있고 즐겁기만 했다. 게다가 우리의 목적지는 정자인지라 가는 곳마다 걸음을 쉬어가며 주변의 풍경도 구경하고 그 나름의 운치와 풍류도 즐길 수 있어서 여행의 재미를 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가 말했던가? 여행의 진짜 묘미는 목표 지점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 여정 자체에 있다고... 우리에게 '관동팔경'이라는 목적지가 그러했다. 무언가 테마를 갖고 떠나는 여행이었기에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감흥이 있고 뭔가를 성취시켜낸다는 작은 보람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어 좋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정자에 대한 기억보다도 Hitch를 하면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던 그 과정에서의 작은 에피소드들과 우리가 마주쳤던 사람들의 얼굴, 뜨거운 도로 위에서 차를 잡으면서 온갖 가지 표정을 만들어내던 동료의 얼굴... 이런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운전하면서 우리 나라 실버산업의 전망성에 대해 침을 튀기면서 논의하던 아저씨,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무뚝뚝한 트럭 운전사 아저씨, 목적지가 딱히 없다며 우리가 가는 목적지까지 논스탑으로 데려다주었던 총각, 삼척에서 경주까지 밥까지 사 먹여가면서 우리를 실어다 주었던 고마운 트럭운전사 행님 등 길에서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말하자면 끝이 없다.
어떨 때는 태워주려던 것을 우리가 모르고 지나쳐버렸다가 다음 목적지에서 다시 만나 우리를 태워주는 집념(?)의 커플도 만날 수 있었고, 도중에 제욱선배의 폰을 잃어버려 낙산사에서 "제 것이 어디 있나 연따라 이룩되지"라는 「화엄일승법계도」의 구절을 외며 마음을 비우기도 했다.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틀 밤을 연이어 무료로 숙박을 해결하기도 했고, 생전 처음으로 8천만원 상당의 고가의 차를 얻어 타보기도 했다.(이름하야 25톤 트럭이라고... 타고 내리는 게 힘들었지만 공중에 붕 떠서 가는 그 기분은 정말 캡~이었다. ^^)
그렇지만 역시 최고의 하이라이트를 들라면 Hitch 할 때의 짜릿함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따가운 햇살 속에서의 기다림에 지쳐있다가도 차가 앞에 가서 서면 언제 지쳤냐는 듯 힘차게 달려가서 탈 때의 그 마음은 아마 Hitch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차를 운전하는 스타일을 보면서 운전사 아저씨의 성격을 짐작해보는 즐거움과 짧은 대화 속에서도 얻을 수 있었던 작은 교훈들, 지도를 들고 낯선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고 때론 차를 얻어 타기도 하면서 목적지까지 조금씩 다가갈 때의 성취감은 이런 여행이 아니라면 언제 느껴보겠는가?
대구에서까지도 학교 앞까지 Hitch를 해서 올 수 있었던 이번 여행은 정말이지 행운 투성이에 좋은 사람 투성이었고, 이런 여행을 함께 떠날 수 있었던 나는 정말 행운아이다.
누군가가 "여행은 무조건 남는 장사"라고 했었다. 나 역시 여행을 할 때마다 그의 지론에 공감하게 된다. 갑자기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무조건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론 어떤 주제를 안고 가도 좋고, 또 없어도 상관없다. 단지 떠나기만 해도, 삶의 한켠에 여백을 줌으로써 생겨나는 여유와 애써 채우려하지 않고 비워둠으로써 더욱 풍요롭게 채울 수 있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여행에는 있다. 이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그래서 나는 이번 가을에 뭔가 잊지 못할 추억거리 하나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권한다.

어디든 떠나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