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여의 키부츠 생활은 나의 짧은 생에 있어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해 접해보고 또 좀더 넓은 세계를 물리적 정신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는 것에서 더 의미가 깊다.
그 가운데 특별히 함께 생활하면서 웃고울고 서로의 감정을 통하리 만큼 정들었던 친구들과 그곳의 사람들은 비록 대할수 없는 수만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가끔씩 그리워하고 지금이라도 버스를 타고 가면 어딘가 내주위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로 생각된다.
한없이 생각에 생각으로만 접해오던 그네들과의 생활은 그들과 맞 잡았던 손에 들어간 애정어린 힘 만큼이나 지금 내 생활에 소중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고있다.
전할수는 없어도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진> 키부츠 키럇아나빔(kiryat anavim)의 볼런티어 휴게실
멋쩍은 모습 뒤로 보이는 건물은 5개월여 머물던 키부츠 키럇아나빔의 볼런티어 휴게실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모든 볼런티어들은 이 곳을 케이브(cave)라고 불렀으며, 건물입구의 좌측에는 태극기를 비롯해서 여러나라의 국기가 보인다. 바로 이곳을 들러간 볼런티어들이 자기 나라의 국기를 그려놓고 간 것이다. 태극기는 내가 오기전에 이미 그려져 있었으며, 어느 따뜻한 오후 우리는 좀더 선명하게 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국에서 보는 태극기는 무엇인지 모를 가슴속의 뭉클함을 일깨워주며 조국의 품을 그립게 했다.
<사진> 키부츠 키럇아나빔(kiryat anavim)의 호텔엽서
머물던 키부츠의 호텔 안내 엽서... 키럇아나빔의 전경을 잘 찍어놓은 엽서이다. 중앙에 호텔 건물이 있고, 좌측상단으로 풀장이 있으며 그 아래로 식당을 비롯해서 주택과 운동장이 있는데, 엽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아쉽군...
<사진>함께 지내던 각 나라의 볼런티어들과 pip 선생
귀국하기 바로 며칠전에 함께 지내던 세계 각나라에서 온 볼런티어들과 메니져겸 영어선생님이었던 영국출신의 pip선생(중앙). 이들은 나에게 세계의 풍속과 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서로의 다른 관점 다른 풍속에 대해 때론 웃고 때론 약간의 갈등도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오히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알고 조금씩 배워갔다. 모두들 좋은 친구로써 기억에 남는다. /
친구들을 잠시 소개하자면, (나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일본 동갑내기 캔따로, 남미 출신의 두 방랑자, 영국출신의 연상커플, 매니져겸 영어선생이었던 핍알론, 핀랜드 여삼총사, 한국의 동갑녀, 핀란드의 기독여성, 한국의 동생 (어찌 이리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까?)
<사진>나의 룸메이트 - 크레이그(craig/캐나다 출신)
당시(1999년) 21살의 어린 나이와는 다른 터프하고 어른스런 모습, 하지만 자세히보면 어딘지 모르게 어리고 순진한 면이 많았다. 그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였는데, 나에게 영어선생이자 영어숙제를 함에 있어서 절대적인 도움(?)을 주었다. 특히, 그는 나에게 영어는 문법이나 단어가 아니라 '영어는 언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지금은 연락이 되질 않지만, 언제고 다시 연락을 해보고 싶다. 앞으로 소개될 키부츠 방에서의 설명에서 보면 알지만 우리네 한국사람 못지않은 정이라는 것을 지닌 캐나다인으로 기억에 남는다. 정말이지 가끔씩 나를 감동시켜 부끄럽게도 눈물 찔끔나게 할 때가 있었다. 나의 생일때와 설날에 날 위해 준비한 특별 이벤트는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사진>볼런티어들의 캠프파이어
밤에 불장난하면 오줌싼다고 집이나 마을에서 캠프파이어를 한다는 것은 우리네 실정에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보이스카웃 수련회등에나 가야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불나기 쉬운 하지만 오히려 고마운 자연에 대한 배려인 것이리라 생각한다. 이스라엘에서는 그럴 염려가 덜하다. 사방에 온통 돌투성이다 보니말이다. 볼런티어들은 1주일에 한번 정도는 이렇게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얘기를 나눈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벤트는 없다. 누군가가 불을 지피고 거기에 한 둘이 모이면 그걸로 캠프파이어는 시작된다. 그리고, 얘기하는 사람, 노래부르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 각양각색으로 모양새를 낸다. 나는 가끔 하모니카를 불었지... 때론 특별한 날에 캠프파이어를 열어 기념하기도 했다.
<사진>크리스마스 이브의 사람들
1999년 12월 22일 밤에 키부츠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날 키부츠 둘러보기를 시작으로 5개월여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마침 때가 천년의 마지막 성탄절과 새로운 천년의 새해 맞이로 온세계가 시끌벅적하던 때였다. 그 천년의 마지막 성탄이브에 기념파티를 준비하다가 찰칵!
함께 이스라엘까지 동행했던 한국 볼런티어들과, 룸메이트 크레이그, 옆에는 핀란드 재주꾼 산나, 뒷줄의 가죽잠바 여성은 멕시코 바네사.
<사진>크리스마스이브 파티 준비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특별한 행사를 한 것은 없다. 우선 볼런티어끼리는 각자가 하나씩의 선물을 준비해서 그것을 큰 바구니에 담아두고 저녁시간에 서로 나누어 가지는 행사를 했다. 나는 아마도 이집트씩의 향 막대를 고른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웃마을의 모샤브(키부츠와 비슷한 공동체)의 식당에 가서 유대인들의 파티에 동참했다. 차려진 음식들이 정말 대단했다. 저녁식사후에는 모두가 마을의 교회에 가서 어린애들의 재롱잔치를 비롯해서 어른들의 공연까지 잘 보고 나왔다. 특별히, 한국 볼런티어들의 공연도 즉석에서 요청되어 우리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찬송을 불렀다.
<사진>우리가 만든 눈사람
날짜를 보면 2000년1월28일 이라고 되어있다. 그 전날 내린 눈으로 우리는 하루종일 재미있게 놀았는데, 눈사람도 만들고 그 앞에서 찰칵! 이스라엘은 겨울이 짧을뿐더러 눈도 자주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복이 많은지 그해 겨울에는 폭설이라 할 만큼 눈이왔다. 나무들이 열대성의 기후에 적응해 있다보니 많지않은 눈에도 뒤로보이는 거목들도 부러지곤 했다.
뒷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멕시코 바네사, 핀란드 애니카, 한국 성진형, 나, 한국 충국형(데이빗). 눈사람 잘 만들었지?
<사진>이스라엘 어린이들과 눈사람
눈이 온 당일(2000년1월27일) 눈사람을 만들고 이스라엘 어린애들과 함께 찰칵!
갑작스레 찾아온 눈과 또 갑작스런 이스라엘 어린애들의 눈싸움... 공격을 받고 한참을 어리둥절 해 있다가 시작된 눈싸움 끝에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어느곳이고 어린애들은 좋고 귀엽고 순진하고 천진한데가 있다.
<사진> 영국출신의 크리스와 그의 여자친구
키부츠 생활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바로 크리스다. 그는 영국 출신으로 당시(1999년) 나이는 21살. 그의 여자친구와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 중이라고 했다. 이들은 참으로 멋있는 커플이다. 크리스는 특별히 제3세계(The third world) 국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영국에 돌아가면 이를 위해 대학에서 공부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여자친구는 브라질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낙후된 브라질의 교육을 위해 그곳에 가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지금도 크리스와는 연락이 되며, 그는 현재 영국으로 귀국해 대학에서 스페인어와 제3세계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가끔씩 밤 세워가며 나누었던 그와의 세계 흐름이나 이데올로기 그리고, 함께 본 축구경기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2002년에는 월드컵을 구경할 겸해서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고 물론 나는 숙식을 제공하기로 했다.
<사진> 사해로 떠난 볼런티어 트립 - 맛사다 정상에서
키부츠에서는 볼런티어들 모두가 함께 떠나는 볼런티어 트립을 한달에 한번 가진다. 4월에는 사해주변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사진의 장소는 이스라엘의 민족단결과 끝없는 저항정신을 대변하는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맛사다' 라는 곳이다.
로마의 침공에 유대인들은 끝까지 항거하다가 이곳 맛사다 정상에 요새를 만들고 최후의 격전을 벌인다. 결국에는 포위되기 직전. 이때 이스라엘의 장군은 그곳의 모든 유대인의 자결을 결정하고, 포로가 되는 대신에 죽음을 택하게 된다. 이곳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고발하는 기념관)과 함께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 된다.
<사진> 가만 있어도 몸이 둥둥뜨는 사해
많이들 보았을 것이다. 사해에서 몸을 띄우고 신문을 읽는 등의 사진들. 혹여나 하면서 띄웠는데 정말로 떴다.
수영에 자신이 없는 사람도 이곳에 가면 수영선수가 될 수 있다. 단, 상처가 있는 사람은 주의! 염분이 많은 관계로 조그마한 상처가 있어도 쓰리다. 그런줄도 모르고 볼런티어 트립 간다고해서 당일 아침 깔끔하게 면도한 나는 얼굴 전체가 후끈거리는 아픔을 참아야 했다.
앞의 하얀색 물질은 염분이 증발되고 난후 돌에 엉켜붙은 소금덩이들인데 마치 수정같다.
<사진> 사해에서 승우형과 폼 한 번 잡아봤쥐...
사해에서 승우형과 폼 한번 잡아봤다. 어색하기 그지없네. 옆에 나란히 앉은 사람은 승우형인데, 앞으로 꿈이 목사란다. 같이 지내본 바로 아주 훌륭한 목사님 한 분이 한국에 탄생할 것 같다. 당시 편입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배움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 컸으며 언제나 삶에 충실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만나고 싶은데... 언제고 한 번 찾아가야쥐...
형은 보기에도 선한 목사님 같다. 그 옆에 나는 조직 두목 같다. 아닌, 조직 똘마니 같다. 그래서 이 사진 제목은 목사님과 조직 똘마니....
<사진>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아랍인 친구들과
키부츠의 중요한 수입원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파이프 공장이다. 비도플렉스(vidoflex)라는 공장인데, 송수관 따위의 쇠파이프를 보호하는 스폰지 형태의 보호관을 만드는 공장이다. 보기에는 별로 좋아보이지도 않는데, 그 기술이나 품질의 우수성 때문에 상당히 고가품으로 취급받고 있고 주요 수출도 이태리를 비롯해서 유럽의 여러나라에 한다. 역시 유대인의 머리는 상당히 좋다.
키부츠 생활을 마치고 떠나오기 전에 공장을 찾아가 그 동안 함께 했던 동료들과 찰칵! 내 우측으로 나와 가장 친했던 아랍인 무님, 좌측에는 이곳의 부사장쯤(이들은 little boss 라고 불렀다)되는 사람, 그리고 아랍인들. 경영은 유대인이 하고 일은 아랍인들이 했다.
<사진> 무님의 생일파티
공장 동료 무님(사진의 중앙 금발 아가씨 뒤로 무릎꿇고 박수를 치려하는 사람)의 생일파티에 볼런티어들이 초대되었다. 생일파티는 야외로 나가서 캠프파이어도 하고 바베큐를 먹으며 댄싱 시간도 가졌다. 지금은 각국에서 온 볼런티어들인 만큼 돌아가면서 각국의 생일축하곡을 부르고 있는 중이다. 물론 한국어로도 생일축하곡이 불려졌다.
<사진> 데이빗 충국형과 리 성진형
키부츠에서 함께 지냈던 충국형(가운데)과 성진형(오른쪽)... 충국형은 먼저 이곳에 와서 볼런티어 생활을 했는데 많은 것을 가르쳐줘서 생활에 적응하고 이것저것 정보를 얻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 특히, 형과 신앙에 대해 나누었던 많은 은혜의 시간과 모범이 되는 형의 신앙생활에서 귀중한 것들을 배웠다. 귀국해서도 한 번 만난적이 있는데, 형의 가는 길에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찬양하던 그 마음이 끊이지 않길 바란다.
성진형은 나와 함께 키부츠에 도착해서 나중에는 나와 룸메이트가 되기도 했다. 형의 소년같은 마음이나 자상한 성격은 외국애들에게 인기 최고였다. 한때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핀잔을 받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누구보다 많은 경험과 공부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에 와서 얻게된 신앙을 다시한번 축복하며 잘 지켜 나가길 기도한다.
<사진> 키부츠에서의 내 방
전격공개! 키부츠에서의 내 방. 원래 방은 사진의 두배다. 보이지 않은 반대편 벽쪽에 나의 룸메이트 크레이그의 침대와 책상이 있다. 대부분 키부츠의 방은 이러하다. 그리 크지 않은 방에 침대가 있고 책상과 옷장이 구비되어 있는 정도다. 군대 내무반 같은 곳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신발은 벗지 않고 방출입을 한다. 단, 잠 잘 때를 제외하고. 나와 나의 룸메이트 크레이그는 둘다 신발을 벗고 다닐때가 더 많았다.
실내장식이 꼭 무당집 같은데는 이유가 있다. 설날이 다가오자 왠지 한국이 더 그립고 부모형제가 생각났다. 흔히 얘기하는 향수병 비슷하게 앓고 있는 날 위해서 크레이그가 꾸며 놓은 것이다. 설날이 이틀지난 어느날, 공장에서 돌아오는데 정원에서 일하고 있던 룸메이트가 능글스럽게 웃으면서 새삼스레 "park, happy new year!" 그러는게 아닌가? 의아에 하며,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여는 순간... 짠~~.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찡하다. 모두들 좋은 룸메이트 뒀다며 부러워했지. 그날 저녁 우리는 다시 한국식 신년파티를 했다. 떡국도 하고싶고 송편도 만들고 싶었지만 재료가 없어서 그냥 튀김이랑 어설픈 비빔밥도 한 것으로 기억난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좌측중간쯤에 벽에 하얀종이가 붙어있고 테두리에 파랗고 빨간 리본띠가 장식된 것을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happy new year/ park' 이라고 적혀있다.
룸메이트 자랑을 좀더 하면, 내 생일에는 며칠에 걸쳐 연습한 '한국어 생일축하곡'을 부르기도 했다. 특히, '사랑하는 시현이'라는 말을 들을때의 감동은... 부럽죠?
<사진>휴게실(cave)에서...
누군가가 나 몰래 찍어놓은 사진이다. 아마 한국의 동갑녀 수진이 쩍었고 역시 수진으로부터 전해받은 사진같다.
가끔 아무런 생각없이 이렇게 휴게실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여기의 복장이 키부츠에서의 평상복 쯤으로 생각하면 되고, 평상시의 모습으로 간주하면 된다.
역시나 맨발이군... 다들 신발을 신고 다녔는데, 맨발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